동양에서 분재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자연과 예술, 철학이 어우러진 삶의 한 방식이었다. 오랜 세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 난초, 소나무, 대나무는 그림 속 주제가 되기도 하고, 실제 분재의 소재로도 사랑받아 왔다. 특히 대나무는 사계절 늘 푸른 기상과 곧은 자태로 인해 높은 정신성을 담은 식물로 여겨졌지만, 형태를 다듬기 어려운 까닭에 현대 분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과거 대나무 분재는 복잡한 조형 없이도 동양적 정취를 풍기는 심미적인 소재로 자리해 왔다. 최근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대나무 분재는, 특유의 단아함과 깊이를 통해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조용한 위안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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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의 굴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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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곡분재의 한두가지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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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품죽의 한두가지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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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단죽류의 이용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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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곡대 만드는 법 |
1. 전통 방식의 대나무 분재
고전적인 대나무 분재는 자연 그대로의 수형을 살려내는 데 중점을 둔다. 대나무밭에서 직경이 약 3cm 정도인 너무 굵지 않은 대를 선택해 약 40cm 너비, 30cm 깊이의 흙을 함께 캐내어 분에 옮겨 심는다. 실내 공간을 고려하여 줄기의 높이는 약 1.2~1.5m로 잘라내며, 이때 절단면은 밀랍 등으로 마감해 수분 증발을 막는다.ib612.com
분에는 자갈층 위에 배양토(양토:모래:부엽토 = 2:3:5 비율로 체로 거른 것)를 깔고 식재하며, 대나무 특유의 뿌리 구조인 지하경(뿌리줄기)을 손상 없이 이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새순이 올라오면 비교적 굵은 줄기 두세 개만 남기고 기존 줄기는 제거한다. 이 방식은 대나무의 본래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사시사철 푸르름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기품 있는 분재 형식이다.
2. 만곡(灣曲) 형태의 조형 분재
대나무는 기본적으로 곧게 자라지만, 이를 의도적으로 굽히는 조형 기법도 있다. 땅에서 솟아오른 어린 순의 껍질을 선택적으로 벗겨내어 생장을 억제하거나 유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 쪽 방향의 껍질을 절반만 제거하면 그 쪽은 성장이 멈추고 반대쪽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줄기가 휘어진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하여 굴곡을 만들 수 있다.
이 작업은 대단히 섬세한 손길을 요구하는데, 신순은 매우 부드럽고 상처를 입기 쉬우므로 경험과 인내가 필요하다. 또한 조형이 끝난 후, 가을이나 다음 해 봄에 분에 옮겨 심는다. 크기에 따라 가는 죽순을 사용하면 소형 분재, 굵은 순은 정원용 만곡죽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3. 정이품죽형 분재 – 마디의 미학
‘정이품죽’이라 불리는 형태는 키는 낮고 마디 간격은 짧으며, 조밀한 가지 구조를 통해 노송과 같은 위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줄기가 곧으면서도 마디가 짧고 가지가 풍성하게 퍼진 모양을 얻기 위해, 발아 직후 매일 한두 개씩 껍질을 정해진 위치에서 벗겨내는 방식으로 조형한다.
이때 측지는 철사로 형태를 잡아주고, 너무 긴 가지는 잘라서 균형을 맞춘다. 이 조형도 마찬가지로 가을이나 다음 해 이른 봄에 분에 옮겨 심는다. 가지를 수평으로 퍼지게 하거나 아래로 드리우는 등 다양한 형식을 연출할 수 있다.
4. 세단죽류 활용 분재
줄기 마디에 죽피가 오래 붙어 있는 세단죽(笹竹)류는 키가 작고 외형이 단정하여 작은 화분에 한 그루 혹은 여러 그루를 심어 군생 형태의 분재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이들은 시중에서도 일부 판매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므로, 초보자보다는 경험자에게 적합한 종이라 할 수 있다.
5. 대나무 분재의 가치와 전망
대나무 분재는 오죽, 맹종죽, 솜대 등 재배 가치가 낮은 세죽류를 활용함으로써 경제적 측면에서도 가능성을 가진다. 정성스럽게 조형한 분재는 고가에 거래되는 외래종보다도 높은 미적 가치를 가질 수 있으며, 적절한 월동 관리만 이뤄진다면 추운 지방에서도 야외 관리가 가능하다.ib612.com
특히, 대나무는 조형 이후 5년 이상 형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정원용으로 활용되는 만곡죽 역시 풍경 요소로서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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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간 왜소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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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간 굴곡형 |
대나무 분재 관리의 요점 정리
햇볕과 통풍 - 충분한 햇볕과 통풍이 필수. 밀폐된 공간에서는 잎이 누렇게 변하고 병이 발생할 수 있다.
월동관리 -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지역에서는 반드시 짚싸기나 온실 등으로 보온 조치 필요.
물주기와 시비 - 과습을 피하면서도 수분이 끊기지 않게 관리. 23월과 67월에 비료를 주거나 액비로 보충.
굴취 및 분식재 시기 - 7월경 장마철이 시작될 무렵, 수형이 완성된 분죽을 분에 옮겨 심는 것이 이상적이다.
정기 관리 - 병충해 예방, 순 자르기, 분갈이 등은 일반 나무 분재와 동일하게 실시.
대나무 분재는 단지 식물을 기르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자연미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현대 생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자연과의 교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로, 그 가치와 아름다움은 앞으로 더욱 조명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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